11월 18일, 북한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을 시험발사하면서 김주애로 추정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을 최초로 공개했다. 김 위원장 부녀가 손을 꼭 잡고 ‘화성 17형 ’ 발사를 지켜보던 장면은 국내외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핵에는 핵으로, 정면대결에는 정면대결로 대답할 것”이라며, “압도적인 핵억제력 제고의 실질적인 가속화 ”를 강조했다 .
이 장면을 보면서 떠오른 대화가 있다 . 2018년 3월 초순 문재인 정부의 특사단은 평양과 워싱턴을 차례로 방문했다 . 특사단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을 만나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사를 밝히면서 트럼프와 만나고 싶어 한다는 뜻을 전했다 . 트럼프는 김 위원장의 제안을 전격 수용하면서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 국장을 평양에 보냈다. 직접 만나서 비핵화 의사를 타진해보라는 것이었다.
‘워터게이트 ’ 특종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워싱턴포스트 >의 밥 우드워드는 <격노 (Rage)>라는 책에서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책에 따르면, 폼페이오는 김 위원장에게 “한국 측은 당신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우리에게 말했는데, 그게 사실이냐 ”고 물었다 . 그러자 김 위원장은 “나는 아버지 ”라며, “내 아이들이 남은 평생을 핵무기를 짊어지고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고 답했다 .
2018년의 김정은과 2022년의 김정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떤 이는 김 위원장이 애초부터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었다며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가 ‘위장 평화쇼 ’에 넘어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다른 이는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사를 갖고 있었지만,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 마음을 바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누구의 분석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길은 거의 막혔다. 2019년에 남북 ·북미대화가 좌초되면서 1단계 합의에도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2018년에 펴낸 <핵과 인간 >이라는 책에 “물리학의 결정체인 핵과 변화무쌍한 인간 의식이 만나면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고 썼다 . 널뛰기를 하듯 비핵화 의사 표명과 핵무장 가속화를 오고간 김 위원장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동시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김 위원장에게 묻고 싶다.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물려주고 싶냐고?
김 위원장은 강력한 핵무력으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수호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안보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에 집착하고 이를 과시할수록 한국, 미국, 일본도 무력시위를 강화할 것이라는 점은 이미 자명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발적인 무력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한반도의 현실이다. 작은 충돌이라도 발생하면 확전으로 치달을 위험도 존재한다. 전쟁을 막고자 하는 언행이 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김 위원장도 깨달아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 위원장의 자녀를 포함한 아이들의 미래는 기후위기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더구나 한반도는 기후변화의 취약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이 좁디좁은 한반도가 세계에서 가장 격렬한 군사 행동의 경연장이 되고 있다. 막대한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군사 무기와 장비는 엄청난 탄소를 배출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북한이 쏘아대는 미사일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화염을 내뿜으면서 날아오르는 미사일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낄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이 남북 ·북미대화의 문을 닫은 지도 어느덧 3년이 훌쩍 지났다. 그런데 이 사이에 한미 정부가 수립한 대북정책에는 분명 ‘유망한 요소 ’가 있다. 북한이 오랫동안 주장해왔던 단계적 해법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김 위원장은 미사일 버튼 위에 올려놓은 손으로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향한 거보에 다시 나서야 한다. 그래야만 모든 아이들에게 더 밝은 미래를 물려줄 수 있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원문보기: 북한의 ICBM과 김주애 [정욱식 칼럼] : 국방·북한 : 정치 : 뉴스 : 한겨레 (hani.co.kr)
11월 18일, 북한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을 시험발사하면서 김주애로 추정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을 최초로 공개했다. 김 위원장 부녀가 손을 꼭 잡고 ‘화성 17형 ’ 발사를 지켜보던 장면은 국내외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핵에는 핵으로, 정면대결에는 정면대결로 대답할 것”이라며, “압도적인 핵억제력 제고의 실질적인 가속화 ”를 강조했다 .
이 장면을 보면서 떠오른 대화가 있다 . 2018년 3월 초순 문재인 정부의 특사단은 평양과 워싱턴을 차례로 방문했다 . 특사단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을 만나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사를 밝히면서 트럼프와 만나고 싶어 한다는 뜻을 전했다 . 트럼프는 김 위원장의 제안을 전격 수용하면서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 국장을 평양에 보냈다. 직접 만나서 비핵화 의사를 타진해보라는 것이었다.
‘워터게이트 ’ 특종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워싱턴포스트 >의 밥 우드워드는 <격노 (Rage)>라는 책에서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책에 따르면, 폼페이오는 김 위원장에게 “한국 측은 당신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우리에게 말했는데, 그게 사실이냐 ”고 물었다 . 그러자 김 위원장은 “나는 아버지 ”라며, “내 아이들이 남은 평생을 핵무기를 짊어지고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고 답했다 .
2018년의 김정은과 2022년의 김정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떤 이는 김 위원장이 애초부터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었다며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가 ‘위장 평화쇼 ’에 넘어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다른 이는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사를 갖고 있었지만,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 마음을 바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누구의 분석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길은 거의 막혔다. 2019년에 남북 ·북미대화가 좌초되면서 1단계 합의에도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2018년에 펴낸 <핵과 인간 >이라는 책에 “물리학의 결정체인 핵과 변화무쌍한 인간 의식이 만나면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고 썼다 . 널뛰기를 하듯 비핵화 의사 표명과 핵무장 가속화를 오고간 김 위원장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동시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김 위원장에게 묻고 싶다.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물려주고 싶냐고?
김 위원장은 강력한 핵무력으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수호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안보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에 집착하고 이를 과시할수록 한국, 미국, 일본도 무력시위를 강화할 것이라는 점은 이미 자명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발적인 무력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한반도의 현실이다. 작은 충돌이라도 발생하면 확전으로 치달을 위험도 존재한다. 전쟁을 막고자 하는 언행이 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김 위원장도 깨달아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 위원장의 자녀를 포함한 아이들의 미래는 기후위기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더구나 한반도는 기후변화의 취약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이 좁디좁은 한반도가 세계에서 가장 격렬한 군사 행동의 경연장이 되고 있다. 막대한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군사 무기와 장비는 엄청난 탄소를 배출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북한이 쏘아대는 미사일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화염을 내뿜으면서 날아오르는 미사일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낄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이 남북 ·북미대화의 문을 닫은 지도 어느덧 3년이 훌쩍 지났다. 그런데 이 사이에 한미 정부가 수립한 대북정책에는 분명 ‘유망한 요소 ’가 있다. 북한이 오랫동안 주장해왔던 단계적 해법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김 위원장은 미사일 버튼 위에 올려놓은 손으로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향한 거보에 다시 나서야 한다. 그래야만 모든 아이들에게 더 밝은 미래를 물려줄 수 있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원문보기: 북한의 ICBM과 김주애 [정욱식 칼럼] : 국방·북한 : 정치 : 뉴스 : 한겨레 (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