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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Now평화 바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통일문화재단
2019-09-23
조회수 1164

“최근에 나온 북-미 간 일련의 발언들을 보면 한반도 평화를 향한 거대한 톱니바퀴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관측을 해본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추석 연휴 기간인 지난 9월13일 브리핑에서 한 말이다. 고민정 대변인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9월22~26일 유엔 총회에 참석하러 미국 뉴욕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고 발표했다.

청와대가 출국 나흘 전에 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참석을 전격 발표한 것은, 한동안 멈춰 있던 한반도 평화의 톱니바퀴가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발표 며칠 전 북한의 북-미 실무 협상 제의(9월9일)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트위터 해임’(9월10일)가 있었다.


‘리비아 모델’, 볼턴의 결정적 해고 원인


북한이 눈엣가시처럼 싫어하던 볼턴의 해고를 두고도 국내외에서 다양한 평가가 나왔다. `‘볼턴 해고로 북-미 협상 장애물이 제거됐다’(댄 스미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소장)는 의견과 ‘볼턴을 해임한 뒤 하루도 안 돼 그를 비난하면서 김정은을 옹호한 것은 미국 대통령이 해선 안 될 행동’(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차관보)이란 평가가 나왔다. 어쨌든 눌러붙고 막혀 있던 한반도 정세가 추석 연휴 전후로 바뀌기 시작했다.

볼턴에 앞서 트위터 해고를 당한 미국 고위직이 여럿 있다. 7월 트럼프 대통령은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을 트위터로 해고했다. DNI는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등 16개 미국 정보수사기관을 관리·감독하는 기관이다. 지난해 3월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도 트위터로 해고됐다.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장은 미국 국내 출장 중에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자신의 해고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제프 세션스 전 법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존 켈리 전 백악관 비서실장 등도 트럼프 대통령과 불화해 교체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경질 배경으로 리비아 모델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11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볼턴)가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리비아 모델을 언급한 것은, 일종의 매우 큰 잘못을 한 것”이라며 “그것은 좋은 언급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카다피에게 일어난 일을 보라”며 다시금 “그것은 좋은 언급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그 뒤 “(이로 인해) 우리가 차질을 빚게 됐다”고 말했다.

리비아 모델은 ‘선 핵포기-후 보상’을 뜻한다.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대통령은 2003년 3월 모든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할 의사를 밝히고 비핵화를 이행했지만, 2011년 반정부 세력에 의해 권좌에서 밀려난 뒤 피살됐다.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건넨 ‘비핵화 정의 문서’에는 리비아 모델이 고스란히 담겼고, 이를 주도한 인물이 볼턴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2003년 리비아에 핵개발 포기뿐만 아니라 화학무기와 생물무기, 그리고 탄도미사일을 모두 포기하라고 요구했다.

볼턴 방식이 결국 리비아 방식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해임하고 리비아 모델을 공개 비판해, 미국 정부 내에서도 리비아 모델은 안 된다는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할 것이다.

그동안 북한은 리비아 방식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며 볼턴을 맹비난해왔다. 북한과 볼턴의 악연은 뿌리 깊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계산된 발언


2003년 조지 부시 행정부 당시 볼턴은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차관이었다. 볼턴은 2003년 7월 한 연설에서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을 “폭군적 독재자” “착취자” 등으로 불렀고, 이틀 뒤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볼턴을 “인간 쓰레기” “피에 주린 흡혈귀”라고 맞불을 놓았다.

2018년 4월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했다. 볼턴은 국가안보보좌관 임명 전후 언론 인터뷰 등에서 북핵 해법으로 ‘리비아 모델’을 여러 차례 주장했다. 북한은 돌아온 볼턴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북한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문에서 “우리는 이미 볼턴이 어떤 자인가를 명백히 밝힌 바 있으며 지금도 그에 대한 거부감을 숨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난 5월24일 볼턴이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5월27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볼턴을 “평화와 안전을 파괴하는 안보 파괴 보좌관” “전쟁 광신자”라며 “이런 인간 오작품은 하루빨리 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외무성 대변인은 “군 복무도 기피한 주제에 대통령에게 전쟁을 속삭이는 호전광”이라며 조롱했다. 볼턴은 1970년 예일대를 졸업한 뒤 곧 나올 베트남전 징집 영장을 기다리지 않고 안전한 미 본토 메릴랜드 주방위군에 입대해 군복무를 마쳤다.

거칠어 보이지만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주장은, 매우 계산된 발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5월26일 트위터에 “북한이 작은 무기들을 발사했다. 이것은 나의 사람들 일부와 다른 사람들을 언짢게 했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김 위원장이 내게 한 약속을 지킬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볼턴의 ‘유엔 결의 위반’ 주장(5월24일)을 부정하고 대북 메시지를 조정한 것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반응은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글 다음날에 나왔다.


북한은 ‘연내 시한’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지도부를 미국 대통령 휴양시설인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하는 문제를 둘러싼 백악관 내부의 갈등도 볼턴 해고 배경으로 꼽힌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탈레반과 협상하는 것에 반대한 볼턴이 비밀 회동 계획을 언론에 흘렸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크게 화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밀 회동 취소와 협상 종결이 자신의 결정이라고 했는데, 볼턴이 대통령의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 데 분노했다는 것이 <폴리티코>의 설명이다.

볼턴이 해고당한 뒤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게이트스톤연구소 비공개 오찬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협정 협상을 위해 탈레반 대표단을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함으로써 탈레반에 ‘끔찍한 신호’를 보냈다고 주장했다고 9월19일 <폴리티코>가 보도했다. 볼턴은 탈레반이 9·11 테러를 일으킨 이슬람 무장단체 알카에다에 은신처를 제공한 점을 상기시키며 이는 9·11 테러 희생자를 모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연내 시한과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 북-미 실무 협상에 나설 것이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9월9일 북-미 실무 협상 재개를 제안하면서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월 시정연설에서 북-미 협상 시한을 올해 말까지로 정해놓은 바 있다.

북한이 요구하는 새로운 계산법은 결국 비핵화와 상응 조처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의 문제다. 최근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상응 조처는 한마디로 안전보장 조처다. 정치, 외교, 경제, 군사 개념이 들어 있다. 군사 분야 안전 보장과 관련해 북-미, 남북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안전 보장을 위해 말이 아니라 미국 장거리전략폭격기, 스텔스기, 항공모함 등의 한반도 배치 중단이나 한-미 연합연습 중단 같은 실제 조처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북은 지난해 9·19 군사 분야 합의서 내용대로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꾸려 군사 신뢰 구축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25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통일부 실력을 보일 때가 이미 왔다


흔히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2018년 2월 평창겨울올림픽에서 시작됐다고 하지만, 앞서 2017년 9월 문 대통령의 유엔 총회 기조연설과 2017년 12월 문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의 역할이 상당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9월21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평창겨울올림픽을 한반도 안정과 평화로 나아가기 위한 ‘지렛대’로 삼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평창겨울올림픽 기간에 전세계 분쟁을 중단하자는 ‘휴전결의안’을 유엔총회에 제출했다. 2017년 11월 유엔총회는 ‘올림픽 휴전 결의’를 채택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돌이켜보면 2017년 9월 유엔총회가 2018년부터 극적으로 전개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시작이었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12월19일 강릉행 고속열차(KTX)에 동승한 미국 방송사와 한 인터뷰에서 한-미 군사연습 연기를 제안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선언했다. 강영식 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은 “한반도 군사 긴장이 정점을 치닫던 2017년 말, 문 대통령이 외신 인터뷰 시점(12월19일)을 놓쳤으면 2018년 신년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창겨울올림픽 참가를 선언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북관계를 북-미 관계의 종속변수로 보는 일부 시각과 관련해 강 전 총장은 “현재 남북관계 어려움을 돌파하려면 우리가 주도해 상황을 돌파하려는 능동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주도적이고 과감한 정책 변화를 취하면서 동시에 시민사회가 역동적으로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정부에 강하게 촉구하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대북제재 틀 안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적지 않다. 실력을 발휘할 상황이 되면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지금은 청와대나 통일부가 한반도 평화를 향한 거대한 톱니바퀴의 움직임을 관측만 할 때가 아니다. 실력을 보일 때가 이미 왔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2019-09-21 한겨레 21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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