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10월22~24일(현지시각) 미국 하와이에서 내년부터 적용될 제 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2차 협상을 했다. 이 협상의 한국 대표는 정은보 한•미 방위비분담 협상대사가 맡았다. 9월에 임명된 정은보 대사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기획재정부 차관보, 금융 위원회 사무처장•금융정책국장 등을 역임한 경제관료 출신이다.
앞서 1991년부터 열 차례 이뤄진 한- 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 협상대표는 국방부나 외교부 현직 고위 관료가 맡아왔다. 경제관료 출신 민간인이 임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과거와 다른” 요구
참여연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등 시민단체들은 방위비분담금이 세금에서 지출되는 만큼 책정 규모의 근거가 타당한지, 집행은 투명하게 이뤄지는지 등 철저히 검증해야 하지만 역대 한국 정부가 속수무책이었다고 비판해왔다. 협상을 주도해온 국방부와 외교부가 튼튼한 한-미 동맹을 강조하며 방위비분담금을 비용이 아니라 안보보험금으로 간주했고, 방위비 분담금이 미국 손에 넘어가는 순간 미국 돈이라는 논리로 집행 투명성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가 경제관료 출신의 정은보 대표를 임명한 것은 미국이 요구하는 항목과 총액의 적절성을 꼼꼼히 따져보고 대응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정은보 협상대사는 10월22일 협상차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결국 방위비 분담도 재정적인 측면에서 부담 문제로 귀착된다”고 밝혔다. 방위비분담금을 ‘재정 부담’으로 접근하는 그의 설명은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미군의 주둔과 역할을 보장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국방부, 외교부의 분위기와는 차이가 났다.
지난 7월 방한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 안보보좌관이 방위비분담금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해 50억달러(약 6조원)까지 대폭 인상 방침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8년 기준 우리가 부담한 방위비분 담금이 1조389억원이므로, 거의 6배 인상을 요구한 것이다. 미국의 대폭 인상 요구가 알려지자, 시민단체 등은 `터무니없다’고 반발했다. 10월18일에는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들이 서울 중구 주한미국대사 관저 담을 넘어 들어가 방위비분담금 인상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최근 발언을 모아보면, 방위비분담금 문제가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서울에서 11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 1차 협상(9월24~25일)이 끝나고 열린 국회 대정부 질문(9월27일)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도 “미국이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요구하는 내용 중 현재 틀로 포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0월21일 국회 외교 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방위비 분담과 관련해 “(미국 쪽에서) 과거에 비해선 다른 그런 요구가 있다”고 말했다.
50억달러엔 주한미군 인건비도 포함
미국이 했다는 ‘과거와 다르고 예상을 뛰어넘고 현재 틀로 포괄하기 어려운 요구’는 무엇일까? 10월18일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미국이 그동안 방위비분담금에 포함되지 않거나 각자 부담했던 △전략자산 전개 △한-미 연합훈련 연습 △주한미군 가족 지원 비용 등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며 그 액수가 30억달러(약 3조5천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50억달러를 요구했고, 이 중 30억달러는 새로운 항목으로 요구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주한미군기지 근무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 △군사건설비(미군기지 내 시설 건설) △군수지원비(용역 및 물자 지원)를 주한 미군에 지원하고 있다.
오미정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원은 “미국은 10차 협정에서도 작전지원 항목 신설을 요구했고, 11차 협상 과정에서도 관철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작전지원 항목은 항공모함이나 핵잠수함, 전략폭격기 등 미국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비용, 주한미군 순환배치 비용, 주한미군 작전준비태세 비용 등이다. 오미정 연구원은 ‘작전지원 항목 신설은 현 방위비 분담금 항목으로는 미국의 세계패권 전력 이행 비용을 반영할 수 없기에 이를 반영하려는 틀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방위비분담금 50억달러 대폭 증액과 작전지원 항목 신설 요구 배경에는 미국의 대중국 봉쇄 전략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요구했다는 50억달러는 미 국방부가 2020년 주한미군 주둔 경비로 편성한 44.6억달러(약 5조2500억원)보다 많다. 미 국방부가 짠 44.6억달러에는 주한 미군 인건비 21억달러, 운영유지비 22억달러, 가족 숙소 관련 비용 1.4억달러, 군사 건설비 등이 포함됐다. 50억달러는 주한 미군 인건비를 포함한 주둔 비용 전체를 달라는 것이다.
이 중 주한미군 인건비 21억달러(약 2조5천억원)는 큰 논란거리다.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 인건비를 부담하면 주한미군이 동맹군이 아니라 한국의 용병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보수 성향 미국 신문 <월스 트리트저널>은 3월14일치 사설에서 “동맹은 맨해튼의 부동산 거래가 아니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은 미군을 용병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1980년대 대학가에서 미군이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한국군은 미제국주의 용병’이란 주장이 나온 것을 떠올리면 말 그대로 격세지감이다.
미국 정부가 한국에 주한미군 인건비를 전가하고 국방예산에서 주한미군 인건비를 뺄 경우, 미국 안에서도 용병 논란이 제기될 것이므로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커서 불가능하다는 예상도 있다. 이와 달리 미 육군 특수작전사령부 전략팀장을 지낸 미국 민주주의수호재단의 데이비드 맥스웰 선임연구원은 “미 행정부 내에는 한국에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엄청난 금액을 충분히 강요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으며, 앞으로 한국과의 협상 내용을 지렛대로 사용해 일본이나 기타 동맹국에도 훨씬 더 많은 분담금을 받아내려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8월 <자유아시아방송> 인터뷰)
소파 협정엔 방위비 분담 근거 없어
한국과 미국이 방위비분담특별협정 협상을 벌이는 것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에는 방위비 분담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소파 제5조를 보면, 한국이 주한미군 시설•부지를 무상 제공하고, 미국은 그 외의 미군 운영 유지비 등을 부담하는 것으로 돼 있다. 주한미군 비용은 한국이 시설과 터만 제공하고 나머지 발생 비용은 미국이 다 부담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미국과 소련이 대결하던 냉전 시대에는 애초 소파 규정대로 미국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냈다. 1980년대 이후 냉전이 끝나고 미국 경제가 어려워지고 한국이 경제성장을 하자, 미국이 ‘한국도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내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파 제5조 규정상 주한미군에 대한 경비 지원이 어렵자, 1991년부터 한-미 양국은 소파 제5조에 대한 예외적 조처로 특별협정(SMA•Special Measures Agreement)을 맺어서 방위비 분담 근거를 만들고 있다. 이를 근거로 애초 미국이 부담하게 돼 있는 주한미군 운영 유지비 일부(한국인 노동자 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를 한국이 지원하고 있다.
양국은 분담비 항목뿐만 아니라 특별협정 협상 시한을 두고도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정은보 대사는 10월22일 “기본적으로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올해 안에 마무리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상호 간 서로 다른 목표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정 부분 지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분담금 협상이 연내 타결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 기지에서 일하는 한국인 9천여 명을 “강제 무급휴가 보내겠다”는 태도다. 미군은 청소, 부대 정비, 경비를 한국 외부 용역에 맡기고 있다.
이에 대해 10월22일 시민평화포럼, 참여연대,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한 ‘한-미 동맹 전환 모색 포럼’ 참가자들은 “미국이 걸핏하면 이런 협박을 하는데, 한국인 노동자들을 무급휴직 보내고 한국군이 직접 하는 청소, 부대 정비, 경비를 주한미군이 직접 하면 된다”는 반응이 나왔다.
마치 한국 위해 주둔하는 것처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주한미군이 마치 한국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주장하고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에도 기자들에게 “우리는 한국에 82년을 있었는데 거의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전문가들도 주한미군은 양국 모두의 이익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이유는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거나 북한 체제가 불안해지면 세계경제에서 두 번째, 세 번째, 열한 번째로 부유한 중국, 일본, 한국이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그렇게 된다면 미국 경제도 심각한 타격을 받기 때문에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 갈등이나 전쟁을 막으려 노력한다.”
주한미군 인건비를 포함한 미군 주둔 비용 전체를 내라는 미국 요구대로라면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 협상의 성격은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아니라 방위비‘부담금’ 협상이 된다. 이는 주한미군 주둔 경비 일부를 한국이 부담하기로 한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의 기본 취지와 어긋난다. 미국이 한국과 방위비 분담 협상을 합리적이고 공평하게 하려면 트럼트 대통령의 구호인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서 벗어나야 한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2019-10-27 한겨레21 원문보기
한국과 미국이 10월22~24일(현지시각) 미국 하와이에서 내년부터 적용될 제 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2차 협상을 했다. 이 협상의 한국 대표는 정은보 한•미 방위비분담 협상대사가 맡았다. 9월에 임명된 정은보 대사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기획재정부 차관보, 금융 위원회 사무처장•금융정책국장 등을 역임한 경제관료 출신이다.
앞서 1991년부터 열 차례 이뤄진 한- 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 협상대표는 국방부나 외교부 현직 고위 관료가 맡아왔다. 경제관료 출신 민간인이 임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과거와 다른” 요구
참여연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등 시민단체들은 방위비분담금이 세금에서 지출되는 만큼 책정 규모의 근거가 타당한지, 집행은 투명하게 이뤄지는지 등 철저히 검증해야 하지만 역대 한국 정부가 속수무책이었다고 비판해왔다. 협상을 주도해온 국방부와 외교부가 튼튼한 한-미 동맹을 강조하며 방위비분담금을 비용이 아니라 안보보험금으로 간주했고, 방위비 분담금이 미국 손에 넘어가는 순간 미국 돈이라는 논리로 집행 투명성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가 경제관료 출신의 정은보 대표를 임명한 것은 미국이 요구하는 항목과 총액의 적절성을 꼼꼼히 따져보고 대응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정은보 협상대사는 10월22일 협상차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결국 방위비 분담도 재정적인 측면에서 부담 문제로 귀착된다”고 밝혔다. 방위비분담금을 ‘재정 부담’으로 접근하는 그의 설명은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미군의 주둔과 역할을 보장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국방부, 외교부의 분위기와는 차이가 났다.
지난 7월 방한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 안보보좌관이 방위비분담금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해 50억달러(약 6조원)까지 대폭 인상 방침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8년 기준 우리가 부담한 방위비분 담금이 1조389억원이므로, 거의 6배 인상을 요구한 것이다. 미국의 대폭 인상 요구가 알려지자, 시민단체 등은 `터무니없다’고 반발했다. 10월18일에는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들이 서울 중구 주한미국대사 관저 담을 넘어 들어가 방위비분담금 인상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최근 발언을 모아보면, 방위비분담금 문제가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서울에서 11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 1차 협상(9월24~25일)이 끝나고 열린 국회 대정부 질문(9월27일)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도 “미국이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요구하는 내용 중 현재 틀로 포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0월21일 국회 외교 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방위비 분담과 관련해 “(미국 쪽에서) 과거에 비해선 다른 그런 요구가 있다”고 말했다.
50억달러엔 주한미군 인건비도 포함
미국이 했다는 ‘과거와 다르고 예상을 뛰어넘고 현재 틀로 포괄하기 어려운 요구’는 무엇일까? 10월18일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미국이 그동안 방위비분담금에 포함되지 않거나 각자 부담했던 △전략자산 전개 △한-미 연합훈련 연습 △주한미군 가족 지원 비용 등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며 그 액수가 30억달러(약 3조5천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50억달러를 요구했고, 이 중 30억달러는 새로운 항목으로 요구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주한미군기지 근무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 △군사건설비(미군기지 내 시설 건설) △군수지원비(용역 및 물자 지원)를 주한 미군에 지원하고 있다.
오미정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원은 “미국은 10차 협정에서도 작전지원 항목 신설을 요구했고, 11차 협상 과정에서도 관철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작전지원 항목은 항공모함이나 핵잠수함, 전략폭격기 등 미국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비용, 주한미군 순환배치 비용, 주한미군 작전준비태세 비용 등이다. 오미정 연구원은 ‘작전지원 항목 신설은 현 방위비 분담금 항목으로는 미국의 세계패권 전력 이행 비용을 반영할 수 없기에 이를 반영하려는 틀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방위비분담금 50억달러 대폭 증액과 작전지원 항목 신설 요구 배경에는 미국의 대중국 봉쇄 전략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요구했다는 50억달러는 미 국방부가 2020년 주한미군 주둔 경비로 편성한 44.6억달러(약 5조2500억원)보다 많다. 미 국방부가 짠 44.6억달러에는 주한 미군 인건비 21억달러, 운영유지비 22억달러, 가족 숙소 관련 비용 1.4억달러, 군사 건설비 등이 포함됐다. 50억달러는 주한 미군 인건비를 포함한 주둔 비용 전체를 달라는 것이다.
이 중 주한미군 인건비 21억달러(약 2조5천억원)는 큰 논란거리다.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 인건비를 부담하면 주한미군이 동맹군이 아니라 한국의 용병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보수 성향 미국 신문 <월스 트리트저널>은 3월14일치 사설에서 “동맹은 맨해튼의 부동산 거래가 아니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은 미군을 용병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1980년대 대학가에서 미군이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한국군은 미제국주의 용병’이란 주장이 나온 것을 떠올리면 말 그대로 격세지감이다.
미국 정부가 한국에 주한미군 인건비를 전가하고 국방예산에서 주한미군 인건비를 뺄 경우, 미국 안에서도 용병 논란이 제기될 것이므로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커서 불가능하다는 예상도 있다. 이와 달리 미 육군 특수작전사령부 전략팀장을 지낸 미국 민주주의수호재단의 데이비드 맥스웰 선임연구원은 “미 행정부 내에는 한국에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엄청난 금액을 충분히 강요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으며, 앞으로 한국과의 협상 내용을 지렛대로 사용해 일본이나 기타 동맹국에도 훨씬 더 많은 분담금을 받아내려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8월 <자유아시아방송> 인터뷰)
소파 협정엔 방위비 분담 근거 없어
한국과 미국이 방위비분담특별협정 협상을 벌이는 것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에는 방위비 분담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소파 제5조를 보면, 한국이 주한미군 시설•부지를 무상 제공하고, 미국은 그 외의 미군 운영 유지비 등을 부담하는 것으로 돼 있다. 주한미군 비용은 한국이 시설과 터만 제공하고 나머지 발생 비용은 미국이 다 부담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미국과 소련이 대결하던 냉전 시대에는 애초 소파 규정대로 미국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냈다. 1980년대 이후 냉전이 끝나고 미국 경제가 어려워지고 한국이 경제성장을 하자, 미국이 ‘한국도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내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파 제5조 규정상 주한미군에 대한 경비 지원이 어렵자, 1991년부터 한-미 양국은 소파 제5조에 대한 예외적 조처로 특별협정(SMA•Special Measures Agreement)을 맺어서 방위비 분담 근거를 만들고 있다. 이를 근거로 애초 미국이 부담하게 돼 있는 주한미군 운영 유지비 일부(한국인 노동자 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를 한국이 지원하고 있다.
양국은 분담비 항목뿐만 아니라 특별협정 협상 시한을 두고도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정은보 대사는 10월22일 “기본적으로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올해 안에 마무리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상호 간 서로 다른 목표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정 부분 지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분담금 협상이 연내 타결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 기지에서 일하는 한국인 9천여 명을 “강제 무급휴가 보내겠다”는 태도다. 미군은 청소, 부대 정비, 경비를 한국 외부 용역에 맡기고 있다.
이에 대해 10월22일 시민평화포럼, 참여연대,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한 ‘한-미 동맹 전환 모색 포럼’ 참가자들은 “미국이 걸핏하면 이런 협박을 하는데, 한국인 노동자들을 무급휴직 보내고 한국군이 직접 하는 청소, 부대 정비, 경비를 주한미군이 직접 하면 된다”는 반응이 나왔다.
마치 한국 위해 주둔하는 것처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주한미군이 마치 한국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주장하고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에도 기자들에게 “우리는 한국에 82년을 있었는데 거의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전문가들도 주한미군은 양국 모두의 이익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이유는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거나 북한 체제가 불안해지면 세계경제에서 두 번째, 세 번째, 열한 번째로 부유한 중국, 일본, 한국이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그렇게 된다면 미국 경제도 심각한 타격을 받기 때문에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 갈등이나 전쟁을 막으려 노력한다.”
주한미군 인건비를 포함한 미군 주둔 비용 전체를 내라는 미국 요구대로라면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 협상의 성격은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아니라 방위비‘부담금’ 협상이 된다. 이는 주한미군 주둔 경비 일부를 한국이 부담하기로 한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의 기본 취지와 어긋난다. 미국이 한국과 방위비 분담 협상을 합리적이고 공평하게 하려면 트럼트 대통령의 구호인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서 벗어나야 한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2019-10-27 한겨레21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