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친서를 주고받으며 남북 보건협력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나오고 있다. 남북 보건협력이 구체화되면 이를 발전시켜 남·북·중·일 4자가 검역과 방역 분야에서 힘을 모으는 동북아 보건의료협력체계 구상도 나온다. 북한의 군사위협에 치우친 전통안보 개념을 넘어 감염병 등을 포함한 신안보 개념이 힘을 얻는 등 안보 인식도 크게 바뀌고 있다.
정부는 남북 정상 친서 교환 뒤 남북 보건협력 등 후속조치 가능성에 대해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조혜실 통일부 부대변인은 지난 6일 정례 브리핑에서 “여러가지 후속조치를 준비한다기보다 코로나19 상황이나 한반도 정세 등 제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판단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대북지원 민간단체들도 북한에 코로나19 방역 협력 의사를 전했으나, 반응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온 나라가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 당장은 남북 보건협력이 어렵다. 중국에 마스크를 지원했다 벌어진 논란을 고려하면, 당장 북한에 마스크나 진단키트, 이동식 음압병실 등의 의료물자 보내기는 쉽지 않다. 최근 `북한에 마스크를 보냈다’는 가짜 뉴스가 돌아 정부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하느라 바빴다.
북한은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국경을 닫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북한은 아직까지 코로나19 감염자가 없다고 공식 발표하고 있지만 진상은 알 수 없다. 전문가들의 분석도 엇갈린다. 실제 아직 감염자가 없을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신속한 국경봉쇄, 예방의학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의료의 특성, 지역 간 이동 통제가 쉬운 북한 사회구조가 방역과 예방에 유리하다고 설명한다. 이미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추정도 만만찮다. 북한 경제가 중국에 많이 의존해 완벽한 북-중 국경 봉쇄가 어렵고, 검사장비와 진단키트 등이 많이 부족해 북한이 코로나19 검사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중국 의존도가 높은 북한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 차단이 북한이 천명한 ‘새로운 길'의 핵심인 북-중, 북-러 협력에도 큰 장애가 되고 있다. 북한은 코로나19를 ‘국가 존망의 중대 정치문제’로 규정했다. 이런 대응을 ‘북한의 보건의료 상황이 허술한 탓’이라고 깎아내릴 일만은 아니다. 미국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미국진보센터의 마이클 푹스 선임연구원 등이 지난 6일 이 센터 누리집에 올린 글에서, 코로나19가 △아시아 역내 긴장 △외교, 군사 준비태세 △각국 정부의 안정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한국, 중국과 일본에서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한 혼선으로 문재인 대통령, 시진핑 주석, 아베 신조 총리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감염병이 현실 안보 위협으로 급부상했다. 최근 군 자체 격리자가 8270여명이다. 국군 1개 사단 규모에 약간 못 미치는 병력이 발이 묶였다. 주한미군도 기지봉쇄 수준으로 대응하고 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긴급 주요 지휘관 회의를 열어 “현시점을 전시에 준한다고 생각하고 모든 자원을 투입하라”고 지시했다. 지난달 24일부터 군 야외 훈련을 전부 중단했고, 이달부터 하려던 한-미 연합훈련도 사실상 취소됐다.
국제사회는 감염병이나 기후변화 등을 새로운 안보(신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대책 마련을 주문해왔다. 신안보란 군사 위협이라는 기존 전통안보 개념과 구별하려고 만든 개념이다. 신종플루,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 새로운 감염병이 등장하자 미국 등 여러 나라가 감염병을 단순 공중보건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안보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공중보건과 국가안보를 결합한 ‘보건안보’란 용어가 등장했다. 미국은 2014년 에볼라 사태 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상설 조직인 국제보건안보팀을 운영했다. 2014년 12월 국제사회는 사스, 에볼라 등 신종 감염병이 각국의 사회 안전, 안보문제와 직결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글로벌보건안보구상(GHSA)이란 국제 공조체계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미국 주도로 28개국,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세계동물보건기구(OIE) 등 보건국제기구가 참여했다.
전통 안보와 신안보는 개념과 대처 방식에 큰 차이가 있다. 전통 안보는 위협을 주는 외부세력을 적으로 여기는 ‘대결과 갈등의 구조’에 터를 잡고 있다. 전통 안보는 나라 안에서 대비태세를 튼튼하게 갖춰 국경 밖에서 가해지는 군사적 위협에 맞선다. 이와 달리 신안보 위협은 국경을 넘는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나타났듯이, 바이러스는 국적과 국경을 따지지 않는다. 신안보 위협에 대처하려면 국가 간 협력이 필요한 ‘협력과 상생의 구조’에서 출발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남·북·중·일 등 동북아 차원의 감염병 공동대응 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한다. 통일보건의료학회 김신곤 이사장(고대안암병원 내분비내과)은 지난 2일 고대의료원이 공개한 영상을 통해, 코로나 위기를 남북이 공동이익과 공동 위험 관리를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반도라는, 22만㎢라는 굉장히 좁은 땅덩어리에서 그중 반쪽이 건강하지 못하면 다른 한쪽도 건강할 수 없다. 남북한이 함께 머리를 맞대 위험 상황과 재난을 공동 관리하는 시스템과 루트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결국 남북한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김신곤 이사장은 동·서독이 통일 전에 보건의료협정 등을 맺어 공식 시스템을 만든 사례를 들기도 했다. 통일연구원장을 지낸 곽태환 미 이스턴켄터키대 명예교수는 최근 언론 기고를 통해 미·중·일·남·북 5개국이 참여하는 ‘코로나19 동북아 지역협력 국제회의’를 한국 정부가 주도해 열자고 제안했다. 코로나19 방역 국제협력을 계기로 남북, 북-미, 미-중, 한-중, 한-일 간 신뢰관계가 구축되면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비핵 프로세스도 진전될 것으로 기대했다. 최근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은 코로나19 방역물자를 개성공단에서 생산하자고 제안했다.
김진향 이사장은 “세계 각국이 마스크, 방호복 등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개성공단에서 마스크 제조업체(50여곳)와 위생방호복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봉제업체(64곳)를 가동하면 국내 수요뿐 아니라 세계 수요까지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이사장은 코로나19 국제 확산 상황을 감안하면, 유엔 안보리 제재위원회 등 국제사회를 설득해 ‘개성공단 가동 방역물자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2020-03-09 한겨레 원문보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친서를 주고받으며 남북 보건협력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나오고 있다. 남북 보건협력이 구체화되면 이를 발전시켜 남·북·중·일 4자가 검역과 방역 분야에서 힘을 모으는 동북아 보건의료협력체계 구상도 나온다. 북한의 군사위협에 치우친 전통안보 개념을 넘어 감염병 등을 포함한 신안보 개념이 힘을 얻는 등 안보 인식도 크게 바뀌고 있다.
정부는 남북 정상 친서 교환 뒤 남북 보건협력 등 후속조치 가능성에 대해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조혜실 통일부 부대변인은 지난 6일 정례 브리핑에서 “여러가지 후속조치를 준비한다기보다 코로나19 상황이나 한반도 정세 등 제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판단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대북지원 민간단체들도 북한에 코로나19 방역 협력 의사를 전했으나, 반응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온 나라가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 당장은 남북 보건협력이 어렵다. 중국에 마스크를 지원했다 벌어진 논란을 고려하면, 당장 북한에 마스크나 진단키트, 이동식 음압병실 등의 의료물자 보내기는 쉽지 않다. 최근 `북한에 마스크를 보냈다’는 가짜 뉴스가 돌아 정부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하느라 바빴다.
북한은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국경을 닫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북한은 아직까지 코로나19 감염자가 없다고 공식 발표하고 있지만 진상은 알 수 없다. 전문가들의 분석도 엇갈린다. 실제 아직 감염자가 없을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신속한 국경봉쇄, 예방의학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의료의 특성, 지역 간 이동 통제가 쉬운 북한 사회구조가 방역과 예방에 유리하다고 설명한다. 이미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추정도 만만찮다. 북한 경제가 중국에 많이 의존해 완벽한 북-중 국경 봉쇄가 어렵고, 검사장비와 진단키트 등이 많이 부족해 북한이 코로나19 검사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중국 의존도가 높은 북한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 차단이 북한이 천명한 ‘새로운 길'의 핵심인 북-중, 북-러 협력에도 큰 장애가 되고 있다. 북한은 코로나19를 ‘국가 존망의 중대 정치문제’로 규정했다. 이런 대응을 ‘북한의 보건의료 상황이 허술한 탓’이라고 깎아내릴 일만은 아니다. 미국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미국진보센터의 마이클 푹스 선임연구원 등이 지난 6일 이 센터 누리집에 올린 글에서, 코로나19가 △아시아 역내 긴장 △외교, 군사 준비태세 △각국 정부의 안정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한국, 중국과 일본에서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한 혼선으로 문재인 대통령, 시진핑 주석, 아베 신조 총리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감염병이 현실 안보 위협으로 급부상했다. 최근 군 자체 격리자가 8270여명이다. 국군 1개 사단 규모에 약간 못 미치는 병력이 발이 묶였다. 주한미군도 기지봉쇄 수준으로 대응하고 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긴급 주요 지휘관 회의를 열어 “현시점을 전시에 준한다고 생각하고 모든 자원을 투입하라”고 지시했다. 지난달 24일부터 군 야외 훈련을 전부 중단했고, 이달부터 하려던 한-미 연합훈련도 사실상 취소됐다.
국제사회는 감염병이나 기후변화 등을 새로운 안보(신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대책 마련을 주문해왔다. 신안보란 군사 위협이라는 기존 전통안보 개념과 구별하려고 만든 개념이다. 신종플루,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 새로운 감염병이 등장하자 미국 등 여러 나라가 감염병을 단순 공중보건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안보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공중보건과 국가안보를 결합한 ‘보건안보’란 용어가 등장했다. 미국은 2014년 에볼라 사태 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상설 조직인 국제보건안보팀을 운영했다. 2014년 12월 국제사회는 사스, 에볼라 등 신종 감염병이 각국의 사회 안전, 안보문제와 직결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글로벌보건안보구상(GHSA)이란 국제 공조체계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미국 주도로 28개국,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세계동물보건기구(OIE) 등 보건국제기구가 참여했다.
전통 안보와 신안보는 개념과 대처 방식에 큰 차이가 있다. 전통 안보는 위협을 주는 외부세력을 적으로 여기는 ‘대결과 갈등의 구조’에 터를 잡고 있다. 전통 안보는 나라 안에서 대비태세를 튼튼하게 갖춰 국경 밖에서 가해지는 군사적 위협에 맞선다. 이와 달리 신안보 위협은 국경을 넘는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나타났듯이, 바이러스는 국적과 국경을 따지지 않는다. 신안보 위협에 대처하려면 국가 간 협력이 필요한 ‘협력과 상생의 구조’에서 출발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남·북·중·일 등 동북아 차원의 감염병 공동대응 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한다. 통일보건의료학회 김신곤 이사장(고대안암병원 내분비내과)은 지난 2일 고대의료원이 공개한 영상을 통해, 코로나 위기를 남북이 공동이익과 공동 위험 관리를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반도라는, 22만㎢라는 굉장히 좁은 땅덩어리에서 그중 반쪽이 건강하지 못하면 다른 한쪽도 건강할 수 없다. 남북한이 함께 머리를 맞대 위험 상황과 재난을 공동 관리하는 시스템과 루트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결국 남북한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김신곤 이사장은 동·서독이 통일 전에 보건의료협정 등을 맺어 공식 시스템을 만든 사례를 들기도 했다. 통일연구원장을 지낸 곽태환 미 이스턴켄터키대 명예교수는 최근 언론 기고를 통해 미·중·일·남·북 5개국이 참여하는 ‘코로나19 동북아 지역협력 국제회의’를 한국 정부가 주도해 열자고 제안했다. 코로나19 방역 국제협력을 계기로 남북, 북-미, 미-중, 한-중, 한-일 간 신뢰관계가 구축되면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비핵 프로세스도 진전될 것으로 기대했다. 최근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은 코로나19 방역물자를 개성공단에서 생산하자고 제안했다.
김진향 이사장은 “세계 각국이 마스크, 방호복 등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개성공단에서 마스크 제조업체(50여곳)와 위생방호복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봉제업체(64곳)를 가동하면 국내 수요뿐 아니라 세계 수요까지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이사장은 코로나19 국제 확산 상황을 감안하면, 유엔 안보리 제재위원회 등 국제사회를 설득해 ‘개성공단 가동 방역물자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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