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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Now코로나 등 ‘감염병 악재’ 기회로…남북 방역협력 새길 뚫어야

통일문화재단
2020-03-19
조회수 937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남북관계, 북-중 관계 등 한반도 정세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28일 국가비상방역체계로 전환을 선포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1월29일치)은 “신형 코로나비루스(바이러스) 감염증의 전파를 막기 위한 사업을 국가 존망과 관련된 중대한 정치적 문제로 여기고 정치사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시스템이 취약한 북한은 아예 국경을 닫았다. 지난 1월31일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모든 항공기와 열차 운행을 중단했다.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문도 닫았다. 북한은 2003년 사드(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도 국경을 통제하거나 폐쇄한 바 있다. ■ 남북관계 악재, 기회 북한이 문을 닫아걸면서 금강산 개별관광 등 남북 경제협력으로 남북 관계 돌파구를 찾으려던 한국 정부의 구상에 힘이 빠졌다. 남북 당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에 온 힘을 다하는 상황이라 북한에 개별관광 협의 제안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도 국경 폐쇄라는 고강도 방역조치로 당분간 사회 불안은 막겠지만 북-중 무역 중단으로 인한 경제불안에 직면할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 등의 자료를 보면, 북한의 대중 무역 의존도는 2000년대 이후 계속 늘어나, 2018년 북한의 무역 상대국 가운데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90%를 넘었다. 이영훈 에스케이(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난 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언론진흥재단(KPF) 포럼에서 대중 무역 중단이 북한 경제에 미칠 충격은 주로 제조업, 특히 임가공 원자재와 식료품 등 소비재 공급부족과 관광수입 감소 등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날 포럼에서 이관세 극동문제연구소장은 ‘2020년 한반도 정세 전망’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북한은 대북제재가 지속·장기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자력갱생, 국방력 강화를 통해 정면돌파해 나가기 위해 모든 역량을 동원해 주민들의 일체화한 결속을 촉구하며 대내 안정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중국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평양에 들어오는 모든 경로를 차단하는 등 대외 교류를 전면 봉쇄해 경제·안보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북한은 이를 국가 존망과 관련된 중대한 정치적 문제로 인식하는데, 이는 체제 불안과 불안정을 야기시키는 요인으로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응하는 보건의료협력을 남북 관계 복원의 계기로 삼자는 주장도 있다. 열악한 보건의료 현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유입 자체를 막으려는 북한으로서는 만약 확진 환자가 발생할 경우 외부로부터의 의료 장비 및 물품 지원이 절실해질 것이다. 이영훈 수석연구원은 “전염병, 수해 등의 재난은 북한만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적극 활용해 재난에 대한 남북한 협력방안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과 국가안보전략연구원도 최근 ‘감염병 확산방지를 위한 남북 협력’ 방안을 제안했다.


■ 피해 최소화 위한 남북 공동대응 지난 3일부터 통일부는 공식 브리핑을 통해 여러 차례 “현 단계에서 정부는 감염병 전파 차단 및 대응을 위한 남북 간 협력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원론적인 주장만을 밝혔다. 북한이 응하지 않으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5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 이후 상황 공유와 확산 방지를 위해 북쪽에 방역 협력 공조를 타진했다. 하지만 북-미 협상 진전이 없자 북쪽이 반응을 보이지 않아 무산된 바 있다. 정부는 ‘우리 측 상황, 그리고 북측의 진전 상황을 봐가면서 논의 시점을 검토해 나갈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방역 남북 협력이 이뤄지면 열 감지 카메라, 진단키트, 음압병동 등 의료시설, 마스크와 손소독제 등 물품 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중국에 마스크를 지원했을 때 ‘우리 형편이 급한데 남 도와줄 처지냐’란 문제 제기가 있었다. 북한에 의료장비와 물품을 지원하면 같은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 내 감염병 확산 방지가 단순한 대북지원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설명한다. 일방적 지원이 아닌 남한과 한반도 주변 국가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란 설명이다. “북한 내부에서 감염병이 통제되지 못하고 크게 확산되면 남한에도 막대한 영향이 미칠 수 있다. 이는 감염병 확산이 국제 협력이 필요한 대표적인 신안보 이슈의 하나로 간주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반도와 같이 면적이 좁은 반면에 수도권 등 특정 지역에 많은 인구가 밀집해 있는 지역에서는 국경을 초월한 협력이 더욱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슈브리핑 2월5일 ‘감염병 확산과 남북 협력’)


■ 대북제재 면제 승인이 관건 감염병 확산을 막으려면 국제 공조가 필수적이므로 중장기적으로 남북·국제 협력체계를 갖춰야 한다. 지난해 타미플루 지원 등 남북 보건의료협력은 대북제재 등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해 겨울 한국 정부와 민간단체가 추진한 북한 내 인플루엔자(독감) 확산을 막기 위한 타미플루 대북지원이 미뤄진 것은 약품을 북쪽으로 실어 나를 트럭이 대북제재에 걸렸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방역 남북협력에 대한 제재 면제 등을 사전에 미국 및 국제 사회와 협의할 필요가 있다. 의료 장비와 물품은 보건의료 목적에 특화돼 있어, 군사 용도로 전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남북 보건의료협력에는 사안별 대북제재 면제가 아닌 포괄적 면제가 필요하다. 대북제재위원회가 인도적 대북 지원활동을 사안별로 승인해 주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 방식은 트럭이 제재에 걸려 타미플루 지원이 무산된 것처럼 실행 과정에서 갖가지 문제가 발생해 대북지원을 가로막고 있다.


■ 재난 공동대응 제도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가라앉아도 비슷한 문제는 얼마든지 다시 생길 수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 구제역 등은 한반도에서 계속 발생하고 있으며, 말라리아와 산림 병충해 역시 남북 공동방역이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 남북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이규창 통일연구원 인도협력연구실장은 재난협력의 우선순위를 설정하자고 말했다. 그는 접경지역 감염병 예방 협력, 무단방류 방지를 위한 접경지대 인근 공유하천의 평화적 이용, 비무장지대 내 산불 발생 시 진화 협력을 우선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이규창 실장은 일이 생길 때 간헐적으로 이뤄지는 남북 보건의료 협력 차원을 넘어 자연재난, 사회재난을 포괄하는 재난 공동대응의 제도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동독과 서독은 1973년 재난공동대응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에는 감염병 발생, 공유하천 홍수, 폭파 또는 폭발 등을 재난으로 규정하고, 재난이 상대쪽 영역으로 넘어갔을 경우 공동대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2020-02-10 한겨레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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