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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NowDJ의 길과 윤석열의 길, 그리고 보수의 특권 [정욱식 칼럼]

재단
2023-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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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굴욕적인 대일외교를 정당화하기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 나오는 게 있다. 1998년 10월에 나온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윤 대통령은 “부침을 거듭하던 한일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었다”며 자신도 DJ의 역사적 결단으로부터 배웠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디제이는 과거사를 ‘직시’한 반면에 윤 대통령은 과거사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미래의 길에도 큰 차이가 있다. 디제이는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대외정책의 핵심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의 화해협력 추진과 더불어 미국과 일본도 북한과 수교를 맺어 한반도 교차승인 구도를 완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디제이는 한미일 대북 ‘외교정책’ 공조를 추구했다. 이에 반해 윤석열 정부는 남북관계는 뒷전으로 미루고 한미일 ‘군사’ 공조에 여념이 없다. 디제이가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에 강한 견제구를 던진 반면에 윤 정부는 이를 환영하고 있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


물론 북핵 문제가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윤석열 정부도 한일 및 한미일 군사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그 주된 까닭은 “북핵 고도화”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디제이 정부 초기에도 한반도 안팎의 상황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디제이가 대통령에 취임할 즈음에는 ‘북한붕괴론’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고 미국의 대북정책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졌었다. 또 1998년 8월에는 북한의 금창리 핵의혹 시설 의혹이 불거졌고 최초의 3단계 로켓 발사도 있었다. ‘대포동 미사일 충격’에 빠진 일본은 대북 경수로 분담금 서명을 취소했고 대북 식량지원과 북일수교 협상도 중단했다. 디제이는 시동도 제대로 걸지 못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살리기 위해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힘겨운 외교전에 나섰다. ‘페리 프로세스’와 ‘김대중-오부치 선언’, 그리고 한미일 대북정책 공조는 이러한 노력의 결과였다.


냉정하게 보면, 디제이가 현직 대통령이더라도 이미 고차 방정식이 되어버린 한반도 문제를 풀기란 대단히 어렵다. 한미일의 여러 정부를 상대해본 김정은 정권은 대화와 협상은 부질없다고 결론짓고는, 안보는 핵으로, 경제는 자력갱생으로, 외교는 중국 및 러시아 중심으로 가겠다고 결심한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한반도 문제와 직결된 미중관계도 신냉전으로 치닫고 있다. 하여 윤석열 정부는 남북관계와 관련해 역대 정부 가운데 가장 어려운 조건과 환경에 처해 있다.


이렇듯 정세는 매우 불리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정부 여당이 이 점을 자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진보정권으로 불리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가 자발적으로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을 유예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색깔론 및 안보 공세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윤 정부가 전구급 한미연합훈련 유예를 선언하면서 북한에 대화를 제의한다면? 아마도 이러한 선택이야말로 보수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1992년 노태우 정부가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팀 스피릿’ 중단을 선언했던 것처럼 말이다.


보수의 특권은 또 있다. 노무현·문재인 정부는 역대급 군비증강을 하고도 국방을 소홀히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반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국방비 증액을 절반으로 줄여도 이런 비난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윤 정부는 진보 정권들의 군비증강에 힘입어 세계 6위의 군사강국이라는 유산을 물려받았다.


민주화 이후 국방예산안이 줄어든 적은 딱 한번 있었다. 디제인 정부 때인 1998년에 책정된 1999년 국방예산안이 바로 그것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IMF 외환위기라는 국난에 처하면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국방비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국방비가 4배 이상 많아졌다. 민생은 그때 못지않게 암울하다.


이러한 점을 두루 고려해, 정부여당이 내년 국방비를 50조원 규모로 책정하고 윤 대통령 임기 동안 이 정도 수준으로 동결하겠다고 발표하면 어떨까? 이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도모하고, 절약한 국방비를 민생 구제와 기후위기 대처에 사용하겠다고 하면 어떨까?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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