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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철의 냉전의 추억]‘스모킹 드래건’ 작전의 굴욕 2009/06/18 13: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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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2009.06.19 제765호]

‘위폐’ 확증 없이 BDA 북한 계좌 동결했다 손수 자금 중개해야 했던 부시 행정부의 전철 밟나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강력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제재가 결정됐다. 제재하면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을까?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경험을 말한다. 강력하게 압박하고 제재할 때 북한이 회담에 나왔다고 한다. 그들은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기억을 말한다. 돈줄을 막자 북한이 매우 아파했다는 거다. 사실이다. 2005년 11월 열린 제5차 6자회담에서 김계관 북쪽 대표는 “금융은 피와 같은 것이다. 금융이 멎으면 심장이 멎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BDA의 또 다른 기억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BDA를 들고 칼춤을 춘 자들의 ‘굴욕’이다. 앞으로 제재 국면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BDA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마카오의 작은 은행 ‘방코델타아시아’(BDA)가 대북 금융제재의 초점으로 떠오른 것은 9·19 공동성명에 대한 워싱턴 ‘강경파’의 역풍 탓이었다. <사진 연합 정주호>

북한 관련 돈세탁 혐의 받았던 BDA

2005년 8월 미국 동부 뉴저지 앞바다에서 호화 결혼식이 열렸다. 호화 요트 ‘로열 참’호에는 턱시도 차림의 조직원들이 리무진을 타고 속속 도착했다. 하객 중에는 미국 연방수사국(FBI) 수사관들도 있었다. 아리따운 신부 역시 오랫동안 함정수사를 준비한 팀이 은밀하게 밀어넣은 여성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날 범죄조직원 59명을 일망타진했다. 그들의 혐의는 무기·위조지폐·마약·위조담배 밀수였다. 유명한 ‘로열 참 작전’이다. 비슷한 시기 미 서부 로스앤젤레스 인근에서도 작전명 ‘스모킹 드래건’이 추진됐다. 불법 자금을 거래한 은행이 주목의 대상이 됐다. 마카오의 2개 은행이 걸렸고, 그중 한 곳이 바로 BDA였다. 미 재무부는 그해 9월 BDA를 ‘돈세탁 우려 대상 기관’으로 지정했다. BDA는 마카오 카지노 업계의 대부인 스탠리 호 집안이 경영하는 작은 은행이다. 재무부의 발표가 있은 지 2~3일도 지나지 않아, BDA 예금 총액의 34%인 1억3천만달러가 인출됐다. 이후 BDA는 예금 인출을 중단했다. 묶은 계좌 중에는 2500만달러 규모의 북한 계좌 50개가 포함됐다. 그중 20개는 국영은행 것이었고, 11개는 무역회사, 그리고 9개는 개인 명의였다.

BDA는 북한의 무기 밀매 및 위조지폐 거래와 관련된 돈세탁 혐의를 받았다. ‘로열 참 작전’과 ‘스모킹 드래건 작전’이 직접적 계기였지만, 미국의 비확산 담당자들은 오랫동안 불법 행위의 배후로 북한을 지목하고 있었다.

의혹의 핵심은 ‘슈퍼노트’라고 불리는 위조지폐 문제였다. 초정밀 위조지폐를 뜻한다. 주로 100달러짜리와 50달러짜리 등 고액권 화폐가 대상이다. 슈퍼노트는 1989년 필리핀 마닐라의 센트럴뱅크에서 처음 발견됐다. 그때부터 북한이 배후로 의심을 받았다. 근거는 무엇인가? 슈퍼노트는 말 그대로 일반인이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초정밀 위조화폐다. 미 조폐청이 사용하는 면섬유 종이, 숨은 그림과 미세문자 등 음각인쇄 방법, 햇볕에 비추면 색이 변하는 시변색 잉크, 이 모든 것을 갖춰야 한다. 이 특수한 화폐용지·인쇄장비·잉크는 각국의 중앙은행 등 화폐 제조를 담당하는 기관에만 제한적으로 판매되며, 그 과정도 엄격하게 관리된다. 미국이 처음부터 슈퍼노트는 개인이나 특정 범죄집단이 아니라, 최소한 국가 수준에서 이뤄지는 범죄라고 추정한 이유다.

그러나 그것은 포괄적인 의혹이다. 확증은 어렵다. 예를 들어 (보는 방향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시변색 잉크를 사용하는 나라는 90여 국에 달한다. 북한도 그 잉크를 스위스 은행에서 1993년에 구입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직접적 증거는 될 수 없다.

최근 2005년 당시의 의혹들이 살아나고 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정보판단을 시도했다. 노무현 정부는 위폐 문제와 관련해 유통과 제작 두 가지를 나눠 검토했다. 북한의 외교관이나 상사원들이 아시아나 유럽에서 위폐를 유통하다 발각된 사례는 적지 않았다. 그래서 유통 문제는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면 북한 당국이 조직적으로 위폐 제작에 참여했는가? 이 문제는 ‘확인 불가’라는 게 당시의 결론이다. 그때 우리 정부의 관계기관에서 북한산으로 의심되는 위폐를 대상으로 기술적인 검증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그런 작업이 제조자를 말해주지는 않았다. 2006년에 새로운 정황증거들이 추가된 적은 있다. 그러나 “의심은 가지만 확증은 없다”는 결론을 뒤집지는 못했다.

당시 북한의 입장은 무엇인가? 2005년 12월 우다웨이 중국 6자회담 대표가 선양으로 가서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만난 적이 있다. 우다웨이는 당시 중국인민은행 관계자를 데리고 갔다. 그때 김 부상은 미국이 달러 위조와 돈세탁의 증거를 제시하면, 그런 범죄에 관여한 북한 인물을 조사해 조처를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 범죄’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개인 부정’의 가능성은 “존재함”을 시사한 것이다. 2006년 3월 북 외무성 리근 미국국장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말했다. 결국 시간이 흘러도 ‘심증은 가나 확증은 없는 이 문제’의 결론을 누구도 내리지 못할 것이다.

미 재무부는 왜 BDA 문제를 다시 들고 나왔을까? 그것은 2005년 9·19 공동성명에 대한 워싱턴 내부의 역풍이었다. ‘협상파’를 겨냥한 ‘비확산파’의 공격이었다. BDA는 전세를 역전시켰다. 국무부의 동아태국은 뒤로 빠지고, 비확산 담당부서와 재무부가 앞에 나섰다. 그 시점에 강경파들은 쾌재를 불렀다. 이런 방법이 있었다니, BDA 효과는 예상보다 컸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6자회담 대표조차 “북쪽이 고통스럽다고 소리치는 것을 보니, 그런 조처가 올바른 방식이 아닌가 하는 아이러니한 생각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슈퍼노트와 북한 관련성 의심만으로

하지만 ‘쾌재’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06년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하고 ‘실패한 외교’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조지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 양자 협상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반전이 시작되었다. BDA의 ‘굴욕’이다.

2007년 1월 독일 베를린에서 북-미 양자 협상이 이뤄졌다. 양국은 BDA의 북한 계좌 동결을 30일 이내에 해제하기로 합의했고, 그 대가로 북한은 60일 이내에 9·19 공동성명의 초기 이행 조처를 취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워싱턴에선 국무부와 재무부의 대결이 재연됐다.

2007년 3월 미 재무부는 BDA에 대한 18개월간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BDA를 ‘돈세탁 우려 금융기관’으로 최종 판정했다. 그러곤 조사를 종결했다. 어중간한 타협이었다. BDA의 북한 계좌는 어떻게 되는 건가? 미국은 마카오와 중국 정부가 북한 계좌를 전면 해제하든 부분 해제하든 더 이상 자기들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밝혔다.

중국은 그때 ‘결자해지’를 요구했다. 매듭을 지은 사람이 직접 풀라는 것이다. 9·19 공동성명의 초기 이행 조처가 BDA라는 걸림돌에 걸려 한 치도 진전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국 국무부가 나서 재무부를 설득했다. 미 재무부는 그해 4월11일 BDA의 북한 자금 동결을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불법이든 합법이든, 돈을 찾아가도 좋다는 것이다. 재무부는 ‘불법’이라는 꼬리표를 아무런 이유도 없이 슬쩍 버렸다. 이제 북한이 돈을 찾아가면 된다. BDA 앞에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이제나저제나 돈가방을 들고 돈 찾으러 오는 북한 사람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은 오지 않았다.

재무부의 굴욕은 끝나지 않았다. 북한은 현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돈 자체보다는 돈의 흐름을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정상적인 금융거래를 해달라는 요구였다. 결국 미 재무부는 북한 돈을 중계할 은행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누가 ‘문제적 돈’에 손을 대겠는가. 중국의 은행들은 손사래를 쳤다. 오죽 답답했으면 중계 은행으로 한국의 은행까지도 거론됐을까. 그러나 언제든지 상황이 바뀌면 일격을 당할 수 있는 위험한 모험을 감수할 은행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금융제재는 벼랑 끝 전술만 불러오건만

초조한 것은 부시 행정부였다. 결국 체면 때문에 버티던 부시 행정부는 굴욕을 선택했다. 달러화 송금은 뉴욕을 거쳐야 하고, 미국의 상업은행들은 아무도 나서지 않고, 북한은 정상적인 금융거래를 요구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기가 놓은 덫에 걸려버렸다. 북한은 ‘배 째라’ 전술로 나왔다. 해법이 없다고 다들 말했다. 북한도 그 정도면 됐는데, 너무 소탐대실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결국 부시 행정부는 미국의 연방준비은행(FRB)을 동원했다. 자기들이 불법이라고 판정했던 돈을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스스로 나서 중계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BDA의 북한 돈 2500만달러가 미국 연방준비은행을 거쳐, 러시아 중앙은행을 경유해, 러시아 극동상업은행에 있는 조선무역은행 계좌로 마침내 송금됐다. 45개월 만이다. 2007년 6월18일 BDA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됐을 때,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이 말했다. “더 큰 그림은 한반도 비핵화에 있다”고. 불법 행위를 강조했던 재무부가 북핵 협상을 강조하는 국무부에 패배했다. 도대체 BDA를 건드린 결과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불법 행위냐, 아니면 핵 문제 해결이냐? 양자택일의 순간에 부시 행정부는 협상을 택했다. ‘BDA의 48개월’은 잃어버린 시간이다. 그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북한은 2006년 7월5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고, 10월9일 핵실험을 강행했다. 대화가 멈추었을 때, 북한은 재빨리 핵 능력을 강화했던 것이다.

다시 금융제재인가?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폐기돼야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태도다. 적대시 정책의 핵심에는 바로 모든 제재의 꽃인 금융제재가 있다. 제재와 협상은 양립하기 어렵다. 금융제재는 북한의 극단적인 벼랑 끝 전술을 불러올 것이다. 협상의 길이 멀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와 다르다. 그때는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 행정부의 금융제재가 갖는 불순한 의도를 문제 삼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금융제재를 앞장서서 주동하고 있다. 위폐 문제를 비롯한 과거의 정보파일까지 외국 언론에 ‘서비스’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굴욕의 기억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외교는 복선이 있어야 하고, ‘무데뽀’ 돌진은 언제나 위험하다. 미국이 ‘턴’할 때, 그때 가서 후회해야 소용없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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